목표를 말한 순간 김이 빠진다면 — 선언의 세 가지 강도를 3주씩 견줘본 기록
매일 저녁 30분 글쓰기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한 사람에게만 말하기·여러 사람 앞에 공개하기를 3주씩 번갈아 해봤다. 실행 횟수는 각각 12일, 17일, 14일이었지만 남은 글의 성격은 숫자와 다른 방향으로 갈렸다. 선언의 세기보다 그 선언이 저녁 시간에 무엇을 바꿨는지가 결과를 갈랐다.
같은 목표를 두고 말하는 방식만 바꿔 3주씩 세 번 반복했다. 목표는 매일 저녁 아홉 시부터 30분 글쓰기 한 가지. 시간대도 자리도 노트도 고정했고, 바꾼 것은 이 목표를 누구에게 어느 정도로 알렸는가뿐이었다. 결심의 세기는 매번 비슷했는데, 3주가 끝날 때마다 달력에 남은 표시는 다르게 생겼다. 채운 날에는 동그라미만 치고, 못 한 날에는 그날 대신 무엇을 했는지를 한 줄 적어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3주
첫 3주는 입을 다물었다. 시작한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빠뜨려도 설명할 일이 없었다. 편했다. 대신 나흘째 저녁에 약속이 생겼을 때 아무 저항 없이 건너뛰었다. 스물한 번 중 열두 번을 채웠다.
빠진 날들의 공통점은 '오늘은 예외'라는 판단을 나 혼자 내렸다는 것이다. 판단이 빠르고 반박이 없었다. 못 한 날 옆에 적힌 줄도 대부분 대단한 사정이 아니었다. 늦게 들어옴, 영상 보다가 열한 시, 그냥 안 내킴.
반면 채운 날의 기록은 길었다. 누가 볼 일이 없으니 문장을 다듬지 않고 그냥 썼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두 페이지쯤 쏟아낸 날도 있었다. 양은 적었지만 세 번의 3주 중 남은 글이 제일 솔직한 것은 이 기간 것이었다.
한 사람에게만 말한 3주
두 번째 3주는 같이 사는 사람에게만 알렸다. "아홉 시부터 삼십 분은 글 쓸 거야." 감시를 부탁한 것은 아니고 통보에 가까웠다.
효과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아홉 시가 되면 상대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내가 의지를 내기 전에 방이 먼저 조용해졌다. 못 한 날에는 "오늘은 안 해?"라는 한 문장이 돌아왔는데, 그게 비난이 아니라 확인이어서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책상에 앉는 날이 있었다. 스물한 번 중 열일곱 번.
다만 상대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나흘은 첫 번째 3주와 똑같았다. 나흘 중 하루만 했다. 붙들고 있던 것이 내 결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와 조용해지는 거실이었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 앞에 공개한 3주
세 번째는 단체방과 SNS에 적었다. 3주간 매일 쓰겠다고 시작일과 종료일까지 박아서 올렸다.
첫 이틀은 확실히 셌다. 반응이 오고, 그 반응을 배신하기 싫어서 앉았다. 문제는 닷새쯤 지나서였다. 관심이 식으면서 밀어주던 힘도 같이 빠졌는데, '공개했다'는 사실만 남아 부담이 됐다. 하루 빠뜨린 다음 날에는 쓰는 것보다 빠뜨린 걸 어떻게 설명할지를 더 오래 생각했다.
결과는 열네 번. 두 번째보다 적다. 글의 내용도 달라졌다. 나중에 보여줄 것을 염두에 두고 쓰다 보니 문장이 반듯해지고 하려던 말이 줄었다. 목표는 30분 앉기였는데 어느새 보여줄 만한 30분을 만드는 일이 되어 있었다.
세 방식을 나란히 놓고 보니
숫자만 보면 한 사람에게 말한 쪽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세 번을 다 겪고 남은 인상은 순위와 조금 다르다.
말하지 않기는 실행률이 낮은 대신 목표가 변형되지 않았다. 여럿에게 알리기는 초반 며칠을 강하게 밀어주지만, 그 힘이 빠진 뒤에는 부담만 남고 목표 자체를 남의 눈에 맞게 바꿔놓았다. 한 사람에게 말하기가 나았던 이유는 의지를 자극해서가 아니라, 아홉 시에 거실이 조용해지는 것 같은 환경 변화를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사람이 없던 나흘 동안은 선언이 아무 힘도 못 썼다.
그렇다면 물어볼 것은 "얼마나 크게 선언할까"가 아니라 "이 선언이 내 저녁 아홉 시에 무엇을 바꾸는가"에 가깝다. 방의 소리를 줄이거나, 누가 시간을 비켜주거나, 책상 위가 미리 치워지거나.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선언이라면 세기를 올려도 늘어나는 건 부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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