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볼 때는 계획이 있었다 — 버려진 식재료 열한 건을 갈라본 사례 분석
세 가구에 3주 동안 영수증과 '버린 이유'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물세 번의 장보기에서 나온 열한 건을 늘어놓자, 버려진 이유가 서로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게으름 하나로 묶여 있던 것이 실은 서로 다른 세 개의 빈칸이었다.
지난 3주간 세 사람에게 같은 부탁을 했다. 장을 볼 때마다 영수증을 남기고, 무언가를 버릴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언제 샀는지·왜 버리게 됐는지를 한 줄로 적어 달라고. A는 혼자 사는 직장인, B는 맞벌이 2인 가구, C는 초등학생 둘을 키우는 4인 가구다.
3주 뒤 모인 기록에는 버려진 식재료 열한 건이 있었다. 장을 본 횟수는 합쳐서 스물세 번. 셋 다 스스로를 "낭비하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숫자만 보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열한 건을 나란히 늘어놓자 이상한 점이 보였다. 버려진 이유가 서로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사례 1 — 무엇을 살지는 정했고, 언제 먹을지는 정하지 않았다
A가 버린 것은 시금치 한 단, 두부 두 모, 닭가슴살 한 팩이었다. 셋 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에 샀고, 살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기록에는 "이번 주엔 좀 해 먹으려고"라고 적혀 있다. 산 날과 버린 날 사이는 평균 9일이었다.
A의 장바구니에는 품목이 있었지만 요일이 없었다. '해 먹는다'는 것은 계획처럼 들리지만, 실은 어느 날 저녁에도 들어맞고 어느 날 저녁에도 미룰 수 있는 말이다. 반대로 3주 동안 한 번도 버려지지 않은 품목이 있었다. 달걀과 우유. 이 둘은 A에게 먹는 시각이 이미 정해져 있다 — 아침 일곱 시 반. 같은 냉장고 안에서 시각을 가진 재료는 남았고, 의도만 가진 재료는 버려졌다.
사례 2 — 같은 것이 두 번 들어왔다
B의 다섯 건 중 세 건은 상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 중복 구매였다. 파프리카, 대파, 우유. 두 사람이 각자 퇴근길에 마트에 들르는 집이다. 장을 보는 순간 "집에 있었나?"를 판단하는 근거는 기억뿐이었고, 기억은 어제 저녁 냉장고 문을 열었던 3초에 의존한다.
B의 기록에 이런 문장이 있다. "분명 어제 열어봤는데." 문을 여는 것과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문을 열면 보이는 건 앞 칸이고, 대파는 대개 뒤쪽 서랍에 눕혀 있다. B의 문제는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방식이 부정확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사례 3 — 남은 것이 다시 '재료'가 되지 못했다
C의 세 건은 사 온 재료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조리된 것들이었다. 카레 반 냄비, 볶음밥 한 그릇, 반쯤 쓴 생크림. 버린 이유 칸에는 셋 다 비슷한 말이 적혀 있다. "내일 먹으려고 뒀는데."
C의 집에서 장보기 목록은 종이에 적히지만, 남은 음식의 다음 순서는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계획에서 빠져나와 '나중'이라는 칸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나중은 날짜가 없다. 사 온 재료보다 조리된 음식이 더 빨리 잊히는 건, 그것이 이미 한 번 '완료된 일'로 처리됐기 때문인 듯하다.
열한 건이 가리키는 한 지점
세 사람의 이유는 달랐다. A는 시각이 없었고, B는 재고를 몰랐고, C는 남은 것을 다시 계획에 넣지 않았다. 그런데 세 경우 모두 계획이 끊긴 자리는 같았다. 사는 순간과 먹는 순간 사이다. 셋 다 살 때는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이 냉장고 문을 넘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3주가 끝난 뒤 각자 한 가지씩만 바꾸기로 했다. A는 장보기 목록 옆에 요일을 적고, B는 마트에 들어가기 전 냉장고 안쪽을 사진 한 장 찍고, C는 남은 음식 용기에 먹을 날짜를 붙인다. 결과를 말하기엔 이르다.
다만 적어둘 만한 것이 하나 있다. 열한 건을 늘어놓기 전까지 셋 다 자기 문제를 '게으름'이라는 한 단어로 부르고 있었다. 늘어놓고 보니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개의 빈칸이었고, 빈칸은 반성보다 메모로 메워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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