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네 가지를 나란히 놓아봤다 — 15분, 25분, 45분, 그리고 눈만 감기
오후 두 시 반의 멍함을 넘겨보려고 4주 동안 낮잠 길이를 일주일씩 바꿔가며 기록했다. 15분·25분·45분·자지 않고 눈만 감기 네 가지를 같은 기준으로 적어 견주었다. 잘 잔 낮잠이 항상 좋은 낮잠은 아니었고, 밤의 잠자리 시각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주었다.
오후 두 시 반, 같은 문단을 세 번째 읽고 있었다. 커피는 이미 두 잔째였고 화면의 글자는 어딘가 두 겹으로 보였다. 이 시간대를 매일 힘으로 밀고 지나가는 게 지겨워져서, 4주 동안 낮잠 길이를 일주일씩 바꿔가며 적어보기로 했다. 15분, 25분, 45분, 그리고 아예 자지 않고 눈만 감고 앉아 있기.
기록은 최대한 단순하게 했다. 누운 시각, 일어난 시각, 일어나고 30분 뒤의 상태를 한 줄,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시각. 잠들었는지 아닌지는 그냥 스스로 판단했다 — 중간에 기억이 끊긴 구간이 있으면 잤다고 봤다. 장소는 내내 같은 소파였고, 평일 다섯 번씩 스무 번의 기록이 남았다.
짧은 쪽: 15분과 25분
15분 주에는 다섯 번 중 두 번만 실제로 잠들었다. 나머지 사흘은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알람을 껐다. 실패한 기분이 들었는데, 정작 오후 네 시에 적어둔 줄은 나쁘지 않았다. '읽는 속도는 돌아왔음.' 다만 그 주에는 다섯 시 이후에 커피를 마신 날이 사흘로 가장 많았다. 짧은 낮잠은 나에게 회복이라기보다 잠깐의 중단에 가까웠던 것 같다.
25분 주에는 다섯 번 모두 잠들었다. 깨어난 직후 5분 정도는 손끝이 둔하고 말을 붙이면 한 박자 늦게 대답했지만, 그 구간을 지나면 오후가 오전과 비슷한 밀도로 돌아왔다. 중요한 건 밤이었다 — 잠자리에 든 시각이 평소와 거의 같았다. 네 주를 통틀어 이 조건을 지킨 주는 25분 주와 눈만 감기 주뿐이었다.
긴 쪽: 45분과 눈만 감기
45분은 확실히 깊게 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깨어나고 20~30분 동안은 머리에 물이 찬 것처럼 둔했고, 그 시간에 쓴 메일을 다음 날 다시 열어보니 문장이 절반쯤 끊겨 있었다. 게다가 그 주 후반 이틀은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졸음이 왔다. 잘 잔 낮잠이 곧 좋은 낮잠은 아니라는 걸 이 주에 알았다.
마지막 주의 '눈만 감기'는 원래 대조군이었다. 타이머 12분, 등받이에 기대 눈만 감고 자지는 않기. 첫 이틀은 그냥 지루했고 머릿속에서 할 일 목록이 계속 돌았다. 그런데 사흘째부터는 눈을 감은 채로 5분쯤 지나면 생각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잠들지 않았는데도 일어나면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이 주에는 저녁의 잠자리 시각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네 주 뒤에 남은 것
숫자로 남은 건 세 가지다. 첫째, 밤 취침 시각이 밀린 주는 45분 주 하나뿐이었다. 둘째, 오후 다섯 시 이후에 커피를 마신 날은 15분 주와 첫 주 초반에 몰려 있었다. 셋째, '오후에 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적은 날이 총 여섯 번이었는데 그중 넷이 15분 주였다.
스무 번 남짓한 한 사람의 기록이니 여기서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낼 생각은 없다. 몸 상태나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면 숫자도 다르게 나올 것이다. 다만 나에게 맞는 조합을 찾는 데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지금은 25분에 정착했고, 회의가 끼어 시간이 안 되는 날에는 12분간 눈만 감는 쪽으로 대체한다.
바뀐 건 사실 길이 자체보다 결정의 구조였다. 예전에는 매일 오후마다 '지금 잘까 말까'를 새로 고민했고, 고민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길이를 미리 정해두니 남은 결정은 '소파로 갈까'뿐이었다. 낮잠이 실패하던 이유는 잠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질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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